고구려인 을파소(乙巴素)는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다만 제2대 유리왕(琉璃王) 때의 대신이었던 을소(乙素)의 후손이라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신분제 질서에 기반하고 있던 고대사회에서 대신의 자손이라면 상당한 귀족 집안이었을 텐데, 어떤 일로 인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가문이 몰락한 때문인지 을파소는 서압록곡(西鴨淥谷)의 좌물촌(左勿村)이라는 해안가에 가까운 지역에서 농사 지으며 살고 있었다. 아마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그는 고구려 사회에서 다시 상층부로 진입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기회는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법이다. 서기 190년 음력 9월의 가을 날씨가 완연한 어느 날, 패자(沛者) 어비류(於畀留)와 평자(評者) 좌가려(左可慮)가 주축이 된 반란이 일어났다. 이들은 왕가의 외척들로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