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스토리

고구려 관등과 일본어 숫자

위클리 히스토리 2025. 12. 2. 12:55


   외국어를 배우다보면 신기한 일이 일어날 때가 있다. 나에게는 일본어를 배우던 시절 의외로 고구려어가 이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미 오래 전에 연구자들이 삼국사기의 지리지를 통해 밝혀냈듯이, 고구려어로 3은 밀(密), 5는 우차(于次), 7은 난은(難隱), 10은 덕(德)이라는 한자로 표현되는데, 흥미롭게도 일본어에서도 비슷하게 3은 미츠(みつ), 5는 이츠(いつ), 7은 나노(なの), 10은 토오(とお)로 읽힌다. (일본어는 한국어보다 숫자를 읽는 방식이 좀 더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두 언어의 많은 명사들이 공통점이 있는데, 그외에도 아직까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부분에서도 고구려어와 일본어 사이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가 있다. 오늘은 한번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대상은 다름 아닌 고구려의 직급 체계이다.

   고구려의 관직에 대한 등급 제도는 크게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지는데, 전반기는 대체로 《삼국지》와 《후한서》의 내용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상가(相加, 대로(對盧), 패자(沛者), 고추(대)가(古雛(大)加), 주부(主簿), 우태(優台), 사자(使者), 조의(皁衣), 선인(先人)

   그런데 모종의 사유로 후반기는 관등의 체계가 일부 변화를 겪었다. 그 결과는 많은 혼선이 있는데, 각 역사서마다 기재된 내용이 조금씩 달라서 정리가 필요하다. 우선 비슷비슷한 원전들을 모아서 발췌해서 보면 다음과 같다.

           《주서(周書)》
           가장 높은 벼슬로는 대대로(大對盧)가 있고, 그 아래에 태대형(太大兄), 대형(大兄), 소형(小兄), 의사사(意俟奢), 오졸(烏拙), 태대사자(太大使者), 대사자(大使者), 소사자(小使者), 욕사(褥奢), 예속(翳屬), 선인(仙人), 욕살(褥薩)의 모두 13등급이 있어, 안팎의 일을 나누어 관장한다.

           《북사(北史)》
           관직은 대대로(大對盧), 태대형(太大兄), 대형(大兄), 소형(小兄), 의후사(竟侯奢), 오졸(烏拙), 태대사자(太大使者), 대사자(大使者), 소사자(小使者), 욕사(褥奢), 예속(翳屬), 선인(仙人)의 모두 12등급이 있어, 안팎의 일을 나누어 관장한다.

           《수서(隋書)》
           관위(官位)에는 태대형(太大兄)이 있고 그 아래에는 대형(大兄), 소형(小兄), 대로(對盧), 의후사(意侯奢), 오졸(烏拙), 태대사자(太大使者), 대사자(大使者), 소사자(小使者), 욕사(褥奢), 예속(翳屬), 선인(仙人)의 모두 12등급이 있다. 또 내평(內評), 외평(外評), 5부(部) 욕살(褥薩)이 있다.

           《구당서(舊唐書)》
           그 나라의 관제(官制)에서 가장 높은 것은 대대로(大對盧)로서 1품과 비슷한데, 국정의 전반을 총괄한다. (중략) 그 아래는 태대형(太大兄)으로서 정2품과 비슷하다. (대)대로 이하 관직은 모두 12등급이 있다.

          《책부원귀(冊府元龜)》
           큰 벼슬로 대대로(大對盧)가 있다. 다음으로 태대형(太大兄), 대형(大兄), 소형(小兄), 의사사(意俟奢), 오졸(烏拙), 태대사자(太大使者), (대사자-누락), 소사자(小使者), 욕사(褥奢), 예속(翳屬), 선인(仙人)이 있고, 욕살(褥薩)을 아울러 모두 13등급이다. 또 내평(內評)과 외평(外評)이 있어 서울과 지방의 일을 나누어 관장하였다.

   전반적으로 보면 12개 등급 내지 13개 등급으로 모아지는데, 미리 말하자면 마지막에 언급되는 욕살 등의 직위는 사실 등급제와 별개이기 때문에 빼는 게 맞으므로 아마도 기록의 원천은 12개였던 것 같다. 또 중간중간 한자가 살짝 다른 부분들도 있는데, 이를테면 의사사와 의후사 중에서는 의사사가 맞고, 또 선인은 동시대의 발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仙人이나 先人 어느 쪽을 사용하든 문제되진 않는다.

   어쨌거나 중복되는 것들을 비롯해 보기 불편한 것들을 한번 일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표로 만들 수가 있다. 다만 12개가 아니라 9개로 재편집을 하였는데, 왜 그런지는 아래에서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대대로(大對盧)
  태대형(太大兄)
  대형(大兄)
  소형(小兄)
의사사(意俟奢)  
오졸(烏拙) 태대사자(太大使者)
  대사자(大使者)
예속(翳屬) 소사자(小使者), 욕사(褥奢)
  선인(仙人)


   대략 ‘-형(兄)’ 계열과 ‘-사자(使者)’ 계열을 차례대로 기술한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아마도 두 종류의 자료를 하나로 합치면서 그렇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구려의 관등 체계를 기록한 것은 더 있다. 어딘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군데군데 보이는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처음으로 《통전》이라는 책에서 고구려의 관등을 아홉 단계로 기재한 것도 주목해보자.

          《신당서(新唐書)》
           관직은 모두 12등급이 있다. 대대로(大對盧)는 혹은 토졸(吐捽)이라고도 하며 국정을 총괄한다. (중략) 그 아래는 울절(鬱折)로, 호적과 문서를 관장한다. 다음은 태대사자(太大使者)이다. 다음은 조의두대형(帛衣頭大兄)으로서 이른바 조의(帛衣)라는 것은 선인(先人)을 말한다. 다음은 대사자(大使者)이다. 다음은 대형(大兄), 다음은 상위사자(上位使者), 다음은 제형(諸兄), 다음은 소사자(小使者), 다음은 과절(過節), 다음은 선인(先人), 다음은 고추대가(古鄒大加)이다.

           《통전(通典)》
           그 나라에는 9품의 관등이 있다. 첫 번째는 토졸(吐捽)로, 옛 이름은 대대로(大對盧)인데 국정을 총괄했다. 다음은 태대형(太大兄)이고, 그 다음은 울절(鬱折)로 중국의 주부(主簿)를 말한다. 다음은 태대부사자(太大夫使者)이고, 그 다음은 조의두대형(皁衣頭大兄)으로 동이에서는 조의선인(皁衣先人)이라고도 한다. 이상의 다섯 등급이 기밀, 정치, 군사, 관직을 관장하였다. 다음은 대사자(大使者), 대형(大兄), 수위사자(收位使者), 상위사자(上位使者), 소형(小兄), 제형(諸兄), 과절(過節), 부과절(不過節), 선인(先人)이다.

   앞서 정리해본 표와는 다른 부분이 있으니 비슷한 방식으로 정리만 해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토졸(吐捽) 대대로(大對盧)
울절(鬱折) 태대형(太大兄)
태대(부)사자(太大(夫)使者)
  조의두대형(帛衣頭大兄)
  대사자(大使者)
  대형(大兄)
  수위사자(收位使者)
상위사자(上位使者)
  소형(小兄)
  제형(諸兄)
소사자(小使者)
과절(過節), 부(不)과절 선인(先人)

 

   앞의 자료군과 달리 ‘-형’ 계열과 ‘-사자’ 계열이 뒤섞여 있는 게 특징이다. 각 직급도 좀 더 세분화되었고, ‘-절’이나 ‘-졸’로 끝나는 이름이 추가된 것도 눈에 띈다.

한원(韓苑) - Wikipedia


   그런데 여기에 추가로 당나라 시기에 작성된 《한원(韓苑)》은 재밌게도 고구려 관등을 9개로 정리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9품제에 맞춰서 설명하는 친절함이 돋보이는 자료이다. 이를 보기 좋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품 토졸 대대로  
정2품 막하하라지(莫何何羅支) 태대형  
종2품 울절    
정3품   대부사자 알사(謁奢)
종3품   조의두대형 중리(中裏)
정4품 힐지(纈支) 대사자 대사(大奢)
정5품   대형가(大兄加)  
종5품   발위(拔位)사자 유사(儒奢)
정6품   상위사자 계달사(契達奢)사자, 을사(乙奢)
정7품 실지(失支) 소형  
종7품 예속, 이소(伊紹) 제형  
정8품 과절    
종8품 부절    
정9품   선인 실원(失元), 서인(庶人)

   여전히 혼란스러운 점은 어쩔 수 없지만 어떤 자료보다도 확실히 가장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책이었는데 원전이 일본에서 20세기 초에 재발견되면서 주목을 받은 자료이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오타들이 꽤 많지만 동시대의 자료인 만큼 가장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건 분명하다.

   자, 그럼 정리해보자. 고구려의 직급 체계는 크게 ‘-사자(使者)’와 ‘-형(兄)’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정확히 왜 그러한지는 아직까지 밝혀져 있지 않다. 사자는 ‘-사(奢)’로 표기되기도 한다. 이 또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여기에 더해 각종 토속적인 발음의 이칭이 따라붙는데, 이 부분이 중요하다.
   고구려의 직급체계에는 분명 고구려식으로 첫째, 둘째와 같은 순서를 매기는 수식어가 따랐던 것 같은데, 그게 신기하게도 일본어에서의 숫자 발음과 거의 유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졸’이나 ‘-절’이 아마도 일본어의 서수를 나타내는 ‘-즈(つ)’에 대응한다. 뿐만 아니라 4와 7의 경우에는 일본어에서는 혼선 때문에 두 가지의 발음 구분법이 있는데, 고구려식으로 표현할 때에도 이 두 숫자만 특별히 ‘-지’로 끝나는 패턴을 보인다. 또한 5의 경우에는 ‘이즈즈’처럼 같은 발음이 두 번 반복되는 게 일본식인데, 고구려어에서도 ‘의사사’처럼 같은 발음이 두 번 반복된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다. 이와 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의 직급 체계를 인위적으로 재배치해보면 다음과 같아진다.
   

품계 일본어 숫자 고구려어 중국어 발음 관등 명칭 이칭
1품 (히)토즈(ひとつ) 토졸 투줘(tǔzuó) 대대로  
2품 후타즈(ふたつ) (막하)하라지 허뤄즈
(héluózhī)
태대형  
3품 밋즈(みっつ) 울절 위져(yùzhé) 대부사자
조의두대형
알사
중리
4품 욧즈(よっつ) / 시(し) 힐지 시에즈(xiézhī) 대사자
대형
대사

5품 이즈즈(いつつ) 의사사 이스셔(yìsìshē) 발위사자 유사
6품 뭇즈(むっつ) 오졸 우줘(wūzhuō) 상위사자 계달사, 을사
7품 나나즈(ななつ) / 시치(しち) 실지 스즈(shīzhī) 소형  
8품 얏즈(やっつ) 예속, 이소 이슈(yìshǔ), 이샤오(yīshào) 제형
소사자

욕사
9품 코코노즈(ここのつ) 과절, 부절 궈지에(guòjié) 선인 실원, 서인

   약간의 보정을 통해 하나의 표로 완성해보았지만, 한 눈에 보기 좋도록 순서를 맞춘 것도 있고 하여 완전히 정확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일종의 예시처럼 앞서의 정보들을 일괄 취합하여 반영해본 것이니 대략적인 틀을 이해하는 정도로는 유용할 듯 싶다.

 

   이미 고구려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은 삼국사기의 지리 명칭 비교를 통해 오래 전부터 많이 밝혀져 있지만, 고구려의 관등체계에서도 일본어와의 유사성이 나타날 것이라고는 예상한 적이 없었다. 이처럼 고구려는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없는 모종의 과정을 거쳐 고대 일본과 어떤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가 있다. 그 비밀은 나중에 깊이 있게 들여다볼 일이 있을 것이다.


# 참고자료 : 삼국사기, 한원, 신당서, 구당서, 수서, 북사, 주서, 삼국지, 후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