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년 5월 18일, 한 무리의 당나라 사신들이 요동반도 끝자락에서 배를 타기 전에 돌에 글을 새겼다. 근처에는 이를 기념하여 미리 파둔 두 개의 우물도 있었다. 사신의 대표는 홍려경(鴻臚卿) 최흔(崔忻)이라는 인물로, 바로 전 해에 당나라에서 발해로 파견되어 외교업무를 수행하고 이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보다 몇 년 전에 시어사(侍御史) 장행급(張行岌)이 먼저 발해에 사신으로 온 적이 있었고, 그를 따라서 대조영이 들째아들 대문예(大門藝)를 당나라로 보냈었다. 그 아들이 이번에 최흔과 함께 발해로 돌아온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우물은 없어졌지만 이 돌만큼은 1,200년 가까이 지나서까지도 그곳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이 벌어지고 일본이 승리하자 기념물로 이 돌을 강제로 가져갔다..